그는 서슴없이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음악가가 꿈이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음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음악이 가슴에 와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하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분명 지금은 그저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말을 빨리 배운 아이였다.
그가 이제 막 돌이 지났을 때 집으로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를 받아 대화를 하기도 하였으니까.
아버지가 세 살 남짓한 그의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처음 녹음해 준 것은 ‘들 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라는 곡이었다.
그가 후렴구인 짜라짜짜짜짜를 반복할 때마다 아버지의 큰 웃음소리가 카세트에 녹음되었다.
동요 송아지나 학교 종이 땡땡땡 등과 같은 노래도 불러서 녹음을 했지만,
그는 이미 마음 약해서라는 곡이 가지는 대중성을 아버지의 웃음으로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가 동요보다 어른들의 음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송창식의 ‘가나다라’는 그가 흉내내기 좋아하는 노래였다.
기타와 노래가 어울린다는 것을 느끼게 한 가수였다. 송창식 노래의 울림에는 무언가 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그 시절 노래 잘하는 가수는 언제나 송창식이었다.
그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쯤 그의 집에 전축이라는 커다란 물건이 생겼다.
말 그대로 물건이었다.
스피커 크기만해도 전에 듣던 카세트보다 컸고, 거기에서 나오는 음향은 이제껏 들어오던 것과는 압도적으로 달랐다.
소리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쯤은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라디오나 LP를 틀면 그도 함께 전축 앞에 서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LP 판에 바늘을 올려놓는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그는 파열음이 생기지 않도록 집중하여 올려놓았다.
올려놓고 첫 곡이 울려 퍼질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즐겼다. 미세한 잡음이 튀는 듯이 들리는 것도 좋았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였다.
여린 소년은 제법 공부를 잘했고 어머니에게 큰 기대를 받는 첫 번째 아이였다.
아버지의 직장이 멀어져서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사해야 했던 그에게 낯선 환경은 친숙하지 않았다.
또한 수학이 갑작스레 어려워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원인들이 그에게 ‘사춘기’를 맛보게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거대한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했고 문득 세상은 그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의 감정이 두려움보다 외로움에 더 가까웠다고 했다.
소년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쪽지를 손에 꼭 쥐고 말이다.
원인 모를 혼미함을 견디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어린 그에게 어머니는 근원적인 안식이었을 테니까.
그런 그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에게 그 눈물을 들켰을 때 그는 수학이 어려워져서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시절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라는 노래가 히트하고 있었다.
그는 이불 속에서 노래 가사와 대면하였다.
‘외로움이 찾아와도 그대 슬퍼하지마. 답답한 내 맘이 더 아파오잖아.’라는 구절을.
그의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음악에 의지한 순간이었다.
슬픔을 홀로 견뎌야 하는 외로움을 달래 준 노래였다.
자신의 슬픔으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이 더 아프지 않도록 소년은 힘을 내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혼미함을 견디게 되었다. 그에게 음악은 그런 힘을 준 촉매제였다.
그가 수원에서 보냈던 4학년 5학년 동안 유행했던 노래는 신형원의 ‘개똥벌레’나 이상은의 ‘담다디’ 같은 곡이었다. 소풍을 갈 때나 학예회 같은 일이 있으면 학생들은 이 노래들을 합창하기도 하였다.
국민학교 6학년 그는 다시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의 학업을 위해 서울에서 교육받는 것이 좋겠다는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다시 정들었던 친구들과 떨어지고 새로 적응해야 하는 서울 생활에서 한창 유행했던 음악은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었다.
친구들은 붉은 노을에 맞춰 안무를 연습하고 노래를 불렀다.
반에서 장기자랑 같은 것이 있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노래였다.
박남정의 ‘널 그리며’를 부르며 박남정의 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친구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 박남정 보다는 이문세 쪽이 더 친근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아버지께서 출장을 가실 때면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안방에서 함께 잠들곤 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이문세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었다.
'창 밖의 별들도 외로워 노래 부르는 밤
다정스런 그대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는 이렇게 시작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포근하면서도 설레는 밤의 느낌을 알아갔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그에게 생일선물로 워크맨이 생겼다.
그 작은 선물은 그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음악이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되기 시작했다.
그와 친구들은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해서 선물해주기도 했다.
변진섭과 신승훈이라는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이성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던 그에게 연애 감정을 담담하게 노래하는 그들 노래는 어렴풋한 사랑의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계속됩니다.
written by 넓은책상
3191을 세대나 가지고 있으면서 배열개조만 달랑 한 대 마무리 지은 상태입니다.
와이즈 보강판을 잘라서 배열개조 한 놈으루다가설라무네 조만간에 사진 한 장 박아서 올리죠 ^^